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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웨이가 지하철이 아닌거 나만 몰랐어!? - 서브웨이의 역사

APRR 2022. 6. 15.

세계에서 가장 매장 수가 많은 패스트푸드점인 서브웨이는 이제 한국에서도 주류 패스트푸드로 자리를 잡아서 누구든 알고 있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근데 서브웨이가 지하철을 의미하는 Subway Train의 서브웨이가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계셨나요?? 나만 몰랐던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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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브웨이의 시작

서브웨이는 뉴욕 브루클린에 살던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프레드릭 아드리안 드루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훗날 이 아이가 커서 세계에서 가장 매장 수가 많은 패스트푸드점인 서브웨이의 창립자가 됩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아주 가난했고 공공주택에 살면서 빈병을 모아서 돈을 버는 게 전부였습니다. 가난했던 가정 형편 탓에 프레드는 어릴 때부터 알바를 엄청 많이 했다고 합니다. 프레드가 10살이 되던 해에 뉴욕의 암스테르담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때도 하루에 400부를 넘게 신문을 돌렸다고 합니다.

 

암스테르담으로 이사를 한 후 이웃 가족들과 친해지게 됐는데 바로 서브웨이의 공동 창립자인 피터 벅의 가족이었습니다. 피터 벅은 프레드보다 10살이 많아서, 이때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10살이나 차이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활 사낭이라는 취미를 즐기며 매우 친한 친구사이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프레드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피터 벅 가족도 60km 정도 떨어진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고 하네요. 근데 미국 기준으로 60km면 옆동네라고 생각하는 가까운 거리라고 합니다. 이사를 한 피터 벅 가족 집으로 프레드 가족은 초대를 받아서 파티를 즐겼는데, 이 당시 프레드는 고등학교 졸업반이고 피터 벅은 컬럼비아 대학 핵물리학 박사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프레드는 피터 벅에게 고민을 하나 털어놓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과대학으로 진학을 하고 싶은데 가정 형편이 나쁘다 보니 대학교 등록금이 없었던 거죠.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왔지만 아르바이트만으로 등록금을 충당할 수가 없었고, 「어떻게 하면 등록금만큼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죠. 이때 피터 벅이 프레드에게 샌드위치 장사를 한 번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프레드는 피터 벅으로부터 천 달러를 빌려서 샌드위치 장사를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맥도널드, 버거킹, 피자헛 같은 패스트푸드가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프레드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생각을 합니다. 「좀 더 건강하고, 살이 덜 찌는 샌드위치」에 포인트를 두고 메뉴 개발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Pete`s Super Submarines라는 이름으로 작은 샌드위치 가게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가게는 자본금 1000달러를 모두 날리고 망해버립니다.

 

프레드와 피터 벅은 실패의 원인을 가게가 너무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른 위치에 2호점을 오픈합니다. 심지어 닥터스 어소시에이츠라는 회사도 설립하면서 말이죠. 이때 회사 이름이 닥터스인 건 프레드의 꿈이 의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2호 점도 망하고 맙니다.

 

2번이나 망하면서 포기할 법도 한데, 눈에 잘 띄는 위치에  3호점을 오픈합니다. 그리고 라디오로 광고도 하기 시작하는데요. 근데 그 광고를 피자 광고로 오인하고 피자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잠수함을 닮았다고 하여 길쭉한 샌드위치를 의미하는 Submarines의 Sub와 방식의 Way를 합쳐서 Pete`s SUBWAY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2번의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이들은 가게의 가시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S와 Y에 화살표가 달린 로고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주문 즉시 만들기 시작하고 빠르게 만드는 의미로 화살표를 사용했고 이후에는 Pete`s까지 삭제해버리고 간결하게 SUBWAY만 사용했습니다.

 

누구든 서브웨이를 보면 지하철을 쉽게 떠올리게 될 텐데요. 잠수함처럼 길게 생긴 샌드위치를 의미하는 Submarines를 줄여서 Sub라고 부르고, 그 뒤에 Way를 붙여서 잠수함 방식으로 만든 샌드위치라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2. 프랜차이즈

의사가 되겠다는 꿈은 샌드위치 가게가 잘되면서 접어버렸고(ㅋㅋ) 본격적으로 샌드위치 사업을 확장시키는 준비를 합니다. 그렇게 프레드와 피터 벅은 많은 직영 매장을 오픈합니다. 문제는 미국은 워낙 크다 보니 같은 주 내에서 오픈한 매장도 품질관리가 안 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래서 프레드와 피터는 서브웨이를 프랜차이즈 체인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맹점을 운영하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프레드는 친구인 브라이언 딕슨에게 직영점 하나를 프랜차이즈 형태로 맡아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이렇게 서브웨이 프랜차이즈 1호점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딕슨은 당시에 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브웨이 프랜차이즈 1호점은 거의 방치가 되었습니다. 프랜차이즈 1호점이 장사가 잘되어야 2호점, 3호점을 계속 오픈할 수 있을 텐데 1호점이 방치가 돼버리니 프랜차이즈 사업은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시점에, 딕슨이 다니던 회사가 망해버렸습니다. 딕슨은 어쩔 수 없이 서브웨이 1호점에 올인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딕슨의 1호점이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프레드는 프랜차이즈 광고를 시작합니다. 초기 투자비용 1,000달러에 서브웨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고, 샌드위치를 만드는 교육을 해주었습니다. 매장 인테리어나 재료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점주가 부담하고 매출의 8%의 로열티를 본사에 지급하는 형태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지 1년 만에 코네티컷 주에 16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점점 매장의 수는 늘어나서 1987년에는 1,000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오픈하고, 11년 만인 1998년 10,000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오픈했으며, 2001년에는 미국 내 맥도널드 매장 수를 따라잡아버립니다.

 

 

3. 제레드 포글 - 109kg 다이어트

1999년에 제레드 포글이라는 한 미국인은 1년 동안 서브웨이 샌드위치만 먹으면서 운동을 했고, 무려 109kg의 체중을 감량하는 사건이 터집니다. 제레드 포글은 원래 200kg이 넘는 거구였는데 서브웨이 매장에서 7종류의 서브웨이 샌드위치에 단 6그랜의 지방만 들었다는 광고를 보게 됩니다. 제레드 포글은 점신에는 15cm, 저녁에는 30cm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규칙적인 운동을 1년간 하기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109kg을 감량해서 91kg의 건강한 체구가 됩니다. 이 내용이 오프라 윈프리 쇼, 래리킹 라이브 같은 유명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서브웨이 다이어트가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광고료 한 푼 쓰지 않고 전년도 매출 대비 19% 매출이 증가하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서브웨이는 제레드 포글을 대변인으로 고용하고 15년 동안 수많은 광고에 나오게 합니다. 그런데 2015년에 이 제레드 포글이 2007년부터 미성년자 성매매를 해왔으며, 아동 포르노를 소지하는 등 중범죄를 저지른 정황이 들통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갈라서게 됩니다.

 

4. 건강한 재료와 눈에 보이는 제조 과정

프레드가 처음 샌드위치 가게를 시작했을 때, 맥도널드,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가 아닌 건강한 음식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직접 농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야채를 구입했고, 빵은 본사에서 구워서 매장으로 배달하는 형태로 사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매장의 수가 늘어나면서 물리적으로 배달이 불가능하게 되자, 매장에서 빵을 직접 구워서 사용하는 방법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서브웨이에 가면 언제나 갓 구운 신선한 빵을 먹을 수 있다」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생기게 된 거죠. 뿐만 아니라 샌드위치 안에 들어가는 육류도 기름에 틔기는 것이 아니라 물에 삶거나 훈제하는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문을 하면 빵을 구워서 샌드위치를 만들기 때문에 다른 패스트푸드 음식에 비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다리기가 싫은 고객들은 서브웨이를 찾지 않았고, 좀 더 빨리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해야 했죠. 의도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의 방법으로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기꺼이 기다리게 만들었고, 직원의 숫자를 줄여서 인건비도 줄이게 됩니다. 바로 눈앞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보는 눈앞에서 신선한 재료로 바로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치 내가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착각을 하게 되고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샌드위치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가맹점들은 직원의 숫자를 줄일 수 있어서 인건비도 줄여 이익을 극대화했죠. 하지만 이는 의도된 건 아니었고,  샌드위치를 만드는 도중에 음료를 뽑아서 도망가는 사람들이 생겨서 그걸 감시하기 위해서 앞으로 보이게 했다고 하네요. 지금도 한참 바쁠 점심시간에 가도 서브웨이는 3 ~ 4명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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